임원 인증센터로
울진은어다리 인증센터에서 임원 인증센터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버스 또는 탁송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나눌 수 있는데 그동안은 버스를 타고 점프를 하거나 모종의 방법으로 하여튼 점프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 동해안 종주이기도 하니까 울진에서 임원 사이의 길을 달려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점프를 할까 하다가 이 쪽 길이 너무 예쁘다는 말도 몇 번인가 들었던 터라서 일부러 가본 것도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만약 또다시 동해안 종주를 온다면 이 쪽은 아마 점프를 할 것 같다.
길이 너무 예뻤다면 이런 생각을 안 했을텐데 막 그렇게 예쁘진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이고 내가 브롬톤이었던 게 두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전 날 만났던 분들이 의외로 아무도 점프를 하지 않고 이 쪽 구간을 라이딩으로 오셨는데 다들 이 쪽 구간의 업힐들을 넘으면서 왜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하여튼 집에 가는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아침 일찍 나가야 할 것 같아 숙소에서 아침 7시에 길을 나섰다. 평소에 회사를 이 시간에 나올 수 있다면 지각을 안 할텐데 나는 왜 종주를 할 때는 이렇게 일찍 숙소에서 나갈 수 있는걸까.
그런데 이 쪽 길은 정식 동해안 종주 루트가 아니라서 그런지 자전거길의 방향 안내가 그렇게 잘 되어 있지는 않았다. 동해안 종주 상행 기준으로 위 세 장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반대편 방향에만 파란색 선이 그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반대쪽에 그어진 선을 보고 길을 찾아갔다.
아침 해가 뜨는 건 보지 못 했어도 그래도 바닷가 바로 위에 떠있는 해를 보고 있자니 내가 동쪽에 와있는 게 실감이 됐다. 동해안 종주를 세 번을 왔지만 일출을 한 번도 못 본 남자, 그게 바로 나다. 근데 이 날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났으니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일출을 봤을지도...
중간에 죽변이라는 곳을 지나면서 굳이 바닷가 쪽으로 돌지 말고 그냥 쭉 지나갈까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직진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바닷가 쪽으로 돌고 있었다. 근데 항구 쪽으로 온 건 좋은데... 여기도 웬 언덕이 떡하니 서있어서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 죽변리를 지날 때는 바닷가 쪽으로 돌지 말고 그냥 가로지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죽변을 지나면서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차량 통행이 많아서 살살 달리느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기저기 종주를 다니다보면 업힐보다 시내 구간이 달리기 더 힘든 경우가 있는데 업힐이야 유유자적 오르면 되는데 시내에서는 차량을 신경 써서 달려야 해서 그런 것 같다.
근데 이 쪽 길을 달리다보니 문득 울진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게 생각이 났다. 날이 그럭저럭 선선하기도 했고 막 엄청나게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열심히 달리다보니 뭔가 낯이 익은 곳이 나왔다. 처음 오지만 낯익은 이 느낌은 뭐지? 수많은 자전거의 끌바의 흔적을 보면서 나도 쫄래쫄래 끌바를 했는데 모래가 생각보다 깊게 쌓여있어서 발이 푹푹 빠졌다. 좀 치워놓고 올 걸 그랬나?
사진에 보이는 데크길은 폭이 매우 좁아서 끌고 올라가야했다. 동해안 종주 첫 끌바가 데크길이라니... 그래도 데크길에서 바다를 보고 있자니 시원하고 기분은 좋았다.
또다시 어느샌가 업힐을 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이 쪽 구간부터는 시내가 아니라서 차량 통행도 적었고 하다보니 이 쪽 구간부터는 꽤나 달릴만 했다. 업힐을 오르고 있자니 문득 전에 버스를 타고 이 쪽 구간을 점프 했을 때 버스를 타고 이 길을 올랐던 생각이 났다. 그 때는 엘파마 에포카를 타고 있었는데 그 때 당시 버스를 타고 이 쪽 길을 넘으면서 절대로 자전거를 타고는 이 쪽 길을 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월천교는 상판이 무너져서 공사를 한다고 2024년 10월 10일 기준 통제를 하고 있었는데 이 쪽 구간 우회길이 3km 정도 되니 혹시라도 동해안 종주를 가시는 분들은 거리 계산 때 참고하시길 바란다. 우회를 하는 방법은 그냥 바닥의 파란선을 따라가면 된다. 파란선을 따라가다보면 이 쪽 길이 맞나 싶은 순간이 있는데 파란선만 믿고 따라가도록 하자.
월천교를 지나면 임원까지는 금방이었는데 달리는 도중에 낯익은 마을이 나와서 헉, 임원 인증센터를 지나쳤나? 하고 놀랐었는데 다행히 호산항이라는 곳이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산항을 지나서 가는 중에 나온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보급을 하고 가기로 했다.
원래는 임원항에 도착해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울진터미널에서 여기까지 오는데만도 40km 정도를 달렸더니 슬슬 배가 고팠다. 공복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나, 칭찬해.
샌드위치를 먹고 있자니 전 날의 턴을 타고 오신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나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숙소에서 나와서 식사까지 하고 오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나랑 같은 곳에 계실 수 있는 걸까? 내가 너무 천천히 왔나?! 편의점에는 MTB 아저씨 네 분이 계셨는데 그 중에 경험자시라는 한 분이 다른 분들에게 오늘은 업힐이 4개 밖에 없어! 라고 약을 팔고 계셨다. ㅋㅋ
그리고 드디어 임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아침 7시에 나왔는데 임원 인증센터에 도착하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임원 인증센터에 도착했더니 턴 선생님께서 앉아서 쉬고 계셨는데 원래 목적지가 주문진이라고 전 날 말씀하신 게 생각이 나서 오늘 주문진까지 가실 수 있겠냐고 여쭤보니 아무래도 목표를 변경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임원 인증센터에서는 크게 할 일은 없으니 인증 도장만 후다닥 찍고 바로 다음 인증센터로 출발하기로 했다. 슬슬 더워져서 바람막이를 벗고 턴 선생님과 함께 다운을 향해 출발했다.
한재공원 인증센터로
그리고 턴 선생님은 쏜살같이 다운을 내려가셔서는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지셨다. 그래서 다시 기어를 3단으로 내리고 유유자적 라이딩을 시작했다. 임원항을 지나서 나오는 해신당으로 가는 업힐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저 멀리에 계신 게 보였었는데 중간 정도 올라가니 그 때부터는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해신당은 사실 지금 기어비로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좀 있었는데 의외로 가볍게 올라갈 수 있었다. 전 날도 그렇고 이 날도 그렇고 좀 무리하게 달려온 탓인지 계속해서 배가 고파서 해신당에서 여유분으로 챙겨뒀던 빵을 먹고 핫식스도 하나 먹어주고 출발했다. 난 원래 종주를 하면서는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이 날은 유난히 배가 고팠다.
한재공원 인증센터로 가는 중에 무쇠소녀단이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어서 이게 뭐야? 했더니 무쇠소녀단이라는 배우들이 철인 3종 경기 어쩌고 하는 TV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어디서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서 내가 동해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TV 에 나오는 건가?! 하고 카메라가 어디 있을까 약간 의식을 하면서 달려봤는데... 맹방 해수욕장까지 가는 동안 나오는 업힐들을 아무리 넘어도 보이지 않는 무쇠소녀단... 그녀들은...
맹방 해수욕장까지 진입해서 보니 아직 무쇠소녀단이 출발하기 전이었다. 쳇. 스크린데뷔의 찬스였는데 아쉽다. 여기저기 카메라가 있고 통제 요원들이 있어서 언제쯤 출발하는지 물어봤는데 잘 모르겠다고 해서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준비하는 걸 보고 있으니까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맹방 해수욕장을 지나 한재공원 인증센터로 가는 중에 갑자기 오른쪽에서 뭔가가 부시럭 거려서 깜짝 놀라서 보니 웬 염소가 있었다. 개인 줄 알고 깜짝 놀랐었는데 막상 보니 염소여서 더 깜짝 놀랐다. 들어보니 카메라를 아주 좋아하는 매우 순한 염소라고 한다.
염소 포인트(?)를 지나서 나오는 업힐을 올라서 한재공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인증센터에 도착해서는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MTB 아저씨께서 업힐을 왜 이렇게 잘 오르냐고 하셔서 나름의 뿌듯함도 느꼈다. 근데 대구에서 부산을 거쳐서 5일 째 자전거를 타고 계신 아저씨가 더 대단하신 거 아닌가요...?!
한재공원 인증센터에서 MTB 아저씨와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다음 인증센터는 10km 정도면 갈 수 있으니 휴식은 다음 인증센터에서 하기로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추암촛대바위 인증센터로
한재공원 인증센터를 출발해서 추암촛대바위 인증센터로 가는 다운 코스에는 새롭게 자전거길이 안내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차도를 따라서 쭉 내려갔었는데 중간에 있는 샛길로 가도록 안내가 되어 있었는데 2024년 10월 10일 기준 상수도 공사를 하고 있어서 길이 막혀있었다. 보니까 공사가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사람이 걸어다닐 정도의 공간은 있는 것 같아서 열려있는 작은 틈으로 들어갔더니 지나갈 수 있었다.
10km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업힐을 올라야하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그나마 첫번째로 나오는 이 업힐은 자전거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뒤에서 차량이 오더라도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사진을 광각으로 찍었더니 절벽처럼 나왔는데 나름 올라갈만한 곳이다.
시내를 지나서 가다보면 두번째 업힐이 나오는데 이 곳은 길도 좁고 차량 통행도 많은 곳이라서 라이더와 차량 운전자 사이에 항상 마찰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통과 하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는데 내 뒤에 오시던 라이더 분이 차량을 다 막아주고 계셔서 나는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뒤에서 쉴새없이 빵빵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나중에 다시 만난 턴 선생님께서는 이 곳에서 너무 빡쳐서 싸울까 하다가 겨우 참았다고 하셨다.
두번째 업힐까지 지나면 이제 한재공원 인증센터는 금방이다. 여기도 항상 보행자가 많아서 이제까지 끌고 다녔었는데 이 날은 웬일로 보행자가 없어서 모래로 덮인 자전거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올 수 있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모래로 항상 자전거길이 숨겨져 있어서 그냥 지나치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추암촛대바위 인증센터에서 만난 분께서 저 쪽에 보이는 저게 촛대바위라고 알려주셔서 처음으로 촛대바위 사진도 찍어봤다. 사실 이제까지 저 옆에 있는 게 촛대바위인 줄 알았다.
망상해변 인증센터로
또다시 배가 고파오기 시작해서 편의점에서 간단히 빵을 먹었다. 김밥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자꾸 나도 모르게 빵으로 손이 먼저 가는 게 역시 나는 빵돌이인 것 같다. 커피도 마시고 싶어서 조지아 크래프트를 샀는데 이게 1+1 을 하고 있어서 안 그래도 무거운 브롬톤과 가방에 짐이 더 늘어버렸던 건 안 비밀.
편의점에서 나와서 자전거길로 가는 중에 바닥에 뭔가 있어서 인형인 줄 알았는데 살아있는 고양이였다. 어휴, 깜짝 놀랐네. 저러고 얌전히 있어서 정말 인형인 줄 알았다.
추암촛대바위를 출발해서 열심히 달리고 있으니 또다시 턴 선생님께서 내 뒤에서 나타나셨다. 혹시나 해서 식사하고 오시는 거예요? 라고 여쭤보니 그렇다고 하셨다. 뭐 좀 먹었냐고 여쭤보시길래 배고파서 빵을 먹고 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왜 이리 식사를 안 하시냐고...
여기서부터 턴 선생님과 잠시동안 팩을 이뤄서 라이딩을 했는데 확실히 누군가와 함께 달리니 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같이 달리면서 왜 임원 인증센터에서 안 따라오셨냐고 물으시길래 먼저 갑니다 하신 거 아니었어요?! 하니까 안 그래도 본인이 먼저 쏩니다 라고 말한 걸 먼저 갑니다 라고 들으신거 아닐까 말을 잘못했나 하고 생각하고 계셨다고 했다.
이 쪽 길은 큰 트럭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서 올 때마다 약간 좀 무서운(?) 곳이다. 무엇보다 시내를 지나는 것도 너무 재미가 없다. 이 곳에는 동해역과 묵호역이 있는데 사실 이 곳에 도착할 때까지 여기서 KTX 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을 수없이 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그렇게 하면 다음에 왔을 때 이 곳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하니 거리와 일정이 너무 애매해질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쳐서 강릉까지 가기로 했는데 이게 또 이 날의 크나큰 패착이었다. 그냥 여기서 집으로 돌아왔어야 하는데...
망상해변 인증센터까지는 시내를 지나는 곳만 제외하면 업힐도 없으니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정말 위에도 적었지만 시내를 지날 때가 가장 피곤한 순간이다. 턴 선생님은 시내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간다고 여기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나는 먼저 망상해변 인증센터로 향했다.
망상해변 인증센터에 도착했더니 먼저 와 계시던 로드 분께서 이야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네 하면서 반겨주셨는데 이 분은 무려 그랜드슬램을 네번째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근데 브롬톤 재질이 철이라니까 아니라고 크로몰리라고 계속 그러셔서 힘들었다. 전 날 버스에 자전거를 실을 때도 크로몰리는 조심해서 실어야 한다고 하시더니...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로드 분이 먼저 가신다고 자리를 뜨셨는데 그와 동시에 그새 턴 선생님께서 커피를 다 마시고 오셔서 다시 2차 수다가 시작됐다.
정동진 인증센터로
턴 선생님이 망상해변 인증센터의 도장을 찍는 동안 먼저 출발해서 시계탑에서 사진을 찍었다. 근데 여기에서도 어떻게 해도 예전에 사진을 찍었던 구도가 나오질 않아서 그냥 대충 시계탑의 사진만 찍고 출발했는데 시계를 보니까 이 때가 벌써 16시였구나. 어쩐지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싶었다.
망상해변을 떠나서 정동진까지 가는 길은 뭔가 굉장히 재미있는 코스였다는 생각이 든다. 막 그렇게 평지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지막지한 오르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선 주행만 하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그런 기분? 물론 제일 큰 문제는 정동진에 도착한 이후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재미나는 코스를 달리고 있으니 드디어 정동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동진이라고 하면 슬픈 추억이 있지만 그것도 일단 제쳐두고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정동진의 업힐이었다. 이 때도 좀 배가 고파오기 시작해서 정동진을 넘고나서 뭘 먹을까 넘기 전에 뭘 먹을까 고민 했지만 정동진을 넘다가 토할 수도 있으니 정동진을 넘고나서 무언가를 먹기로 하고 정동진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진짜 토할 것 같은 정동진의 업힐!! 전에 44t 로 왔을 때도 꽤나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죽을 뻔 했다. 보통 업힐을 하면서 바닥보다는 앞을 보면서 가는 주의인데 정말 앞을 못 봤다. 바닥만 보면서 브롬톤의 핸들이 부숴져라 당기면서 죽어라 밟은 끝에 노끌바 클리어 달성!!
첫번째로 나오는 코너에서 뒤에 차가 왔다면 아마 끌바를 했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차가 오지 않아서 거의 중앙선까지 가서야 코너를 돌 수 있었다. 첫번째 코너는 거의 중앙선까지 가야 코너를 돌 수 있으니 끌바를 하기 싫은 분들은 꼭 알아두기를 바란다. 절대 인으로는 돌 수 없다. 차가 온다면 손을 들어서 일단 양해를 좀 구하고 최대한 바깥으로 돌자.
위에서 동해역이나 묵호역에서 돌아가지 않은 게 패착이라고 적었던 이유가 여기에서 일어났다. 정동진 노끌바 클리어 달성!! 을 마음 속으로 외치는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놔...
나는 도대체 왜 어딜 가던 비가 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기상청을 열어서 봤더니 하필이면 또 정동진에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노끌바 클리어 달성의 기쁨도 잠시였고 정말 짜증이 대박인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 때 상황을 생각했더니 또 화가 나네.
정동진 인증센터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턴 선생님께서 뒤따라 오셨다. 이 때가 벌써 17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우리 둘 다 꼼짝 없이 야간 라이딩을 하겠네요 하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경포해변 인증센터로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여기서 또 고민을 시작했다. 정동진역에서 KTX 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까 말까 하는 고민이었는데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부슬비였기 때문에 그래, 이 정도는 한 번 맞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그냥 경포해변 인증센터로 출발했는데 이것 또한 패착인 순간이었다.
정동진역을 지나서 업힐을 열심히 오르고 있자니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고프로도 가민도 다 빼버리고 가방에 넣어서 비닐로 가방을 씌웠을텐데 뭔가 종주 때마다 비가 오니 이제는 해탈해버려서 그런 생각도 안 들었다. 그냥 전부 비를 맞히면서 길을 갔다.
그렇게 30분 정도 비를 맞고 달리고 있자니 비가 그쳤지만 이미 나는 쫄딱 젖은 생쥐여서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해가 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많이 거리를 뽑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잘 생각해보면 경포해변 인증센터에 해가 밝을 때 도착한 기억이 없었다.
사실 이 때도 울진 ~ 임원 구간을 점프 했다면 비를 맞지도 않았을테고 벌써 집에 돌아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있었을텐데... 하면서 저 구간을 달린 걸 매우 후회했는데 뭐 이미 비를 맞아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어느 순간 해가 완전히 져버려서 친구들에게 내가 두 시간 뒤까지 연락이 없다면 이 곳의 주소는... 하는 메세지를 남겨두고 야간라이딩을 시작했다. 약간 노을이 지네 싶었는데 깜깜해지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어두운 데다가 비가 와서 바닥의 자전거길 표시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핸드폰도 GPS 를 제대로 못 잡는 바람에 길을 한 차례 잘못 들어서 뒤로 돌아가던 도중에 다른 라이더 분을 한 분 만나서 같이 강릉까지 갈 수 있었다. 라이트 한 개로는 좀 부족 했는데 한 분이 같이 달리니 그나마 앞이 보여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었다.
이 어두운 곳에서 우리와 마주치니 길 한가운데 멈춰서 우리가 먼저 지나가길 기다려주셨던 차량 운전자 분께도 무한한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러고보면 이번 동해안 종주 중에는 매너 있는 운전자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안정적인 라이딩이 가능했다.
드디어 어두운 산길을 탈출해 강릉 시내에 진입했을 때 같이 달리던 분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달리면서 여쭤보니 라이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셨는데 동해안 종주를 오신 게 너무나도 대단했다. 심지어 중간에 지갑을 분실해서 10km 정도를 되돌아갔다가 오셨다고 했는데 내가 이 날 150km 를 탔으니까 무려 170km 를 타신... 와우.
원래는 동해안 종주를 올 생각은 없었는데 국토종주를 찍어놓고 있다보니 왠지 수첩을 산 김에 다른 종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오셨다고 한다. 다들 결국 이렇게 되는 법이니 꼭 충주댐과 안동댐도 국토종주 할 때 찍으세요~ 꼭입니다.
강릉에 온 김에 게임 길드원들도 만났으면 좋았겠지만 한 명은 해외, 한 명은 동해시에 있다고 해서 아쉽게도 만나지 못 하고 왔다. 동해에서 연락을 했으면 비도 안 맞고 올 수 있었을까...? ㅠㅠ 근데 그랬으면 기차 시간이 또 애매해질 뻔 했다.
하여튼 경포해변 인증센터에 도착해서 집으로 오는 KTX 를 타기 위해 또다시 페달을 밟았는데 경포해변부터 강릉역까지도 생각보다 꽤 거리가 있었다. 역풍을 뚫으며 30분 정도를 달려서 강릉역에 도착해서 집으로 오는 KTX 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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