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함안보 인증센터로
적교장에서 아침 7시에 나와서 편의점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근데... 나는 왜 자꾸 당장 먹지도 않을 걸 미리 사서 짐만 늘어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사진의 샌드위치는 먹지 않고 가방에 잘 보관 하다가 거의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먹었다. 하긴 언제 편의점이 있을지 모르니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겠다.
전 날 라이딩을 하면서 가장 기분 좋았던 게 하늘이 너무 멋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날도 아침부터 구름이 너무 멋있었다. 이게 바로 그 가을 하늘의 정취라는 건가? 이 날도 빡세게 달려야 했는데 하늘 사진을 찍느라 자꾸만 발을 멈추게 됐다.
너무나도 멋진 하늘을 감상하며 잘 닦인 길을 달리다보니 낙동강 종주의 최대 난관인 박진 고개가 나왔다. 사실 이번 낙동강 종주의 가장 큰 도전 목표는 하루 170km 를 타는 것도, 200km 를 타는 것도 아닌 박진 고개를 끌바 없이 넘는 것이었는데... 무끌바 무정차로 박진고개를 넘는 것에 성공했다!!
바람 방향을 보니까 온전한 내 실력이 아닌 뒷바람을 타고 올라갔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드는데 하여튼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만약 박진 고개 정상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박수를 쳐줬으려나... ㅋㅋ
박진 고개에 올라간 김에 낙동강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고 오려고 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너무나 추워서 물 한모금과 사진 한 장 정도의 여유만 가지고 바로 내려가는 길로 향했다. 박진 고개를 넘었으니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다음 난관인 영아지 고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아지 고개는 우회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왕 박진 고개를 넘은 김에 영아지 고개도 넘었으면 좋았을테지만 우선 이번에는 박진 고개로 만족하기로 했다.
근데 이번 낙동강 종주를 하면서 내 기억이 뭔가 잘못된 게 많다는 생각을 한 게 분명히 지금까지는 박진 고개를 내려오면 곧바로 영아지 마을에 진입이었다고 나는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박진 고개를 내려와서 영아지 마을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왜일까? 이전까지는 로드를 타고 달려서 그랬나...?
영아지 고개 우회길은 터널이라서 자전거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기도 한데 차량 통행량도 적고 뭐 어쩌고 해서 라이더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자출사에서 터널 내에서 차량이 달려올 때 소리가 너무 울려서 무서웠다는 글을 보면서 무서워봤자 얼마나 무섭겠어?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달려보니 무슨 말인지 바로 실감이 됐다. 차량 소리가 진짜 너무 무서웠다. 다행히 내가 달리는 방향으로는 차가 한 대도 안 와서 다행이었는데 만약 바로 뒤에서 차가 온다고 생각하면... 어휴.
영아지 고개 우회길은 터널을 총 2개를 지나는데 첫 번째 터널은 오르막이었고 두 번째 터널은 내리막이었다. 첫 번째 터널을 지나면서는 우회길도 만만치 않네... 하고 생각 했다가 두 번째 터널을 지나면서는 첫 번째 터널에서 고생한 보상이 주어지는 느낌이었다. 진짜 이 다운힐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아지 마을을 지나서 이후 창녕함안보까지는 힘들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물론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좀 지쳤고 중간에 안내가 끊어져서 약간 헤매기도 했다. 영아지 고개 우회길을 지나서 좀만 가면 시내가 나오니까 밥도 먹을 수 있고 보급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그냥 달리기로 했다. 역시 나의 종주에 밥은 없다.
창녕함안보에 도착하니 로드를 타신 분이 고프로로 영상을 찍고 계셨는데 인사를 할까 하다가 영상을 찍는데 너무 집중하고 계셔서 차마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이 날 달리는 내내 신기하게도 나를 여섯 번이나 추월해가셨지...
티거맨에게 두 시간 정도면 양산물문화관 인증센터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을 남기고 전 날 구매했던 보름달 빵을 여기에서 먹고 양산물문화관 인증센터로 출발했다.
양산물문화관 인증센터로
양산물문화관 인증센터까지 달리는 길은 사실 코스가 어렵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지치는 구간이었다. 이제까지의 낙동강 종주에서도 여기까지 오면 멘탈이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힘을 낼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멘탈이 너덜너덜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55km 정도 되는 거리를 단 하나의 인증센터도 없이 알아서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달려야 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고 본다. 55km 나 27km + 28km 나 사실 거리는 같지만 목표가 27km 뒤에 있는 것과 55km 뒤에 있는 건 멘탈 관리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증센터 좀 늘려주세요.
이 날은 완전히 뒷바람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뒷바람이 불어주었기 때문에 55km 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두 시간 조금 넘게 달리면 양산물문화관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오판이었다. 나는 분명히 엄청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고 속도계에도 속도가 25~28km 정도가 꾸준히 찍히는 걸 보면서 달려왔는데 삼량진에 도착했을 때가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티거맨에게 두 시간 정도면 양산물문화관 인증센터에 도착할 수 있을거라 했었는데 앞으로 40분은 더 걸릴 것 같다는 메세지를 남기고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린건지 이 글을 적는 지금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길도 분명히 엄청 좋았는데.
하여튼... 삼량진에서 40분 정도를 더 달려서 양산물문화관 인증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죽어라 앞만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와서 이 구간에서 찍은 사진이 제일 적은 것 같다. 하긴 뭐 딱히 찍을만한 사진도 없었다. 마사 터널을 찾아가는 길도 약간 헤맸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헤맸지? 싶다. 그냥 쭉 가면 되는 거였는데.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인증센터에서 도장만 후다닥 찍고 티거맨이 기다리는 황산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양산물문화관 인증센터에서 황산공원까지는 약 2km 정도였다.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로
그래서 티거맨이 누구냐면 내가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넥슨의 어둠의전설이라는 게임에서 같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부산에 사는 길드원의 이름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부산까지 간다 하니 마침 이 근처에 산다고 해서 커피를 들고 마중을 나와주기로 했다. 2km 정도면 5분도 안 돼서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더 멀게 느껴졌다.
티거맨이 사다준 마카롱과 아메리카노로 기운을 보충하고 30분 정도 수다를 떨다가 마지막 목적지인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를 향해 출발했다. 내가 약속시간보다 40분이나 늦지만 않았으면 밥을 먹어도 됐었을 것 같은데 늦어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ㅠㅠ
근데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는 여유(?)로웠어서 밥을 먹었어도 됐을 것 같기도 하고... ㅋㅋ 역시 자전거를 탈 때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최소 1.5배 이상의 시간을 잡아야 한다. 이건 진리다. 왜 티거맨을 만나러 올 때는 이 공식을 잊었을까... 2시간에 1.5배 공식을 적용했으면 시간이 딱 맞았을텐데.
티거맨과 헤어지고서 낙동강하굿둑을 향해 달리는데 이 황산공원이 보기보다 어마무시하게 컸다. 10분은 넘게 달린 것 같았는데 표지판을 보니 아직도 나는 황산공원 안에 있었다. 황산공원 안에는 갈대와 핑크뮬리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여유롭게 산책을 하기에도 좋아보였다.
황산공원을 벗어나서 조금만 더 달리면 부산 시내로 진입할 수 있는데 부산 시내로 진입하면 낙동강 종주가 끝나는 건 아니고 부산 시내에 진입해서도 30km 정도는 더 달려야 최종 목적지인 낙동강하굿둑까지 도착할 수 있다. 예전에 왔었을 때는 공원 내에 산책하는 사람과 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달리기가 힘들었었는데 이번 낙동강 종주는 날씨 덕분인지 사람이 적어서 나름 달리기가 수월했다.
달리다가 보니 티거맨의 보급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배가 또 고파와서 아침에 구매한 샌드위치와 금요일에 묵었던 숙소에서 챙겨 온 사과 드링크를 여기에서 먹었다. 근데 먹은 건 좋은데 쓰레기통이 도저히 보이질 않아서 20분 정도는 쓰레기를 손에 들고 달린 것 같다.
을숙도로 가는 마지막 자전거 도로는 8년 전에도 3년 전에도 그렇게 상태가 좋지는 않았었는데 아직까지도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노면이 불량하면 노면을 다시 포장할 생각을 해야지, 노면이 불량하니 감속하라는 안내 문구는 도대체 왜 붙여두는건지 이런 식으로 일하고도 잘리지 않는 부산 공무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중간에 공사 구간이 있어서 우회를 해야 했는데 우회 표시도 이상하게 해놔서 그냥 포장을 걷어낸 길로 달려서 통과했다. 공사를 하는 건 좋은데 우회 표시는 제발 좀 제대로 해놨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전거 도로를 계속 따라서 달리다보니 드디어 을숙도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여기에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을숙도가 보이니 드디어 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는 탓일까, 긴장이 풀려서 달려도 달려도 을숙도가 가까워지지 않으니 여기가 진짜 박진 고개보다도 힘든 구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난관인 을숙도까지의 라이딩을 무사히 마치고 낙동강 종주의 최종 목적지인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하니 로드를 타고 왔을 때는 느끼지 못 한 마지막 안도감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이제까지의 브롬톤 종주는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였는데 이번에는 혼자 와서 더 그런 걸수도 있었겠다.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에서 인증을 받고 그랜드슬램 인증까지 마치기 위해 유인 인증센터가 문을 닫기 전에 도착하려고 죽어라 달려왔는데 도착해서 보니 인증센터의 운영시간은 17시 30분까지였다. 내가 여기에 도착한 게 16시 15분이니 한 시간이나 여유가 있었다. 물론, 일찍 도착하면 좋지만 조금 더 티거맨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왔어도 됐겠군.
하여튼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토종주 수첩을 새로 구매하고 1년 내에 그랜드슬램 달성하기 목표를 이루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낙차만 아니었다면 9월이나 10월쯤 진작에 그랜드슬램을 마쳤을텐데 몸이 회복된 후로도 태풍이네, 장마네, 비네 해서 종주를 도대체 몇 번을 취소 했는지...
다음 그랜드슬램 3회차 도전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번 그랜드슬램은 조금 더 여유롭게 해보고 싶은 바람이다. 이번에는 모든 종주 코스를 너무 달리기만 했다. 에몬다를 탔을 때 국토종주 도장을 찍었던 수첩이 남아있으니 다음 번에는 국토종주를 제외한 다른 코스만 달리면 된다.
유인 인증센터에서 인증을 마치고 소희 누나가 통영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부산까지 픽업을 하러 와준다 해서 서울까지는 소희 누나 차를 얻어타고 편하게 올라왔다. 중간에 문경에 들러서 닭갈비도 먹었는데 역시 닭갈비는 청평 닭갈비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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